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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Kwon Stories
로마서8장 본문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오심으로, 마침내 이 치명적 딜레마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은, 늘 먹구름이 드리운 것 같은 암울한 삶을 더 이상 살지도 않아도 됩니다. 이제 새로운 힘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세찬 바람처럼 불어와서 하늘의 구름을 모조리 걷어 주었습니다. 죄와 죽음이 하는 잔혹한 푹군 밑에서 평생을 허덕거려야 했을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문제의 급소를 찌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문제를 자신과 동떨어진 문제로 취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들이신 예수 안에서 친히 인간의 처지를 떠맡으시고, 진창 속에서 씨름하고 있는 인류 안으로 들어오셔서, 문제를 영단번에 바로잡아 주신 것입니다. 그동안 율법 조문은 이런 일을 해낼 수 없었는데, 균열된 인간 본성으로 인해 그것 역시 허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언제나 근본적 치유가 아니라, 죄에 대한 미봉책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동안 응할 수 없었던 율법 조문의 요구에 우리가 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한층 더 노력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고 계신 일을 우리가 받아들임으로써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도덕적 힘을 재보는 일에만 몰두할 뿐, 정작 실제 삶에서 그 힘을 발휘하여 일하지는 못합니다. 반면에, 자기 안에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활동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살아 숨 쉬고 계신 하나님이!-계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자아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결국 막다른 길에 이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주목하는 사람들은 탁 트이고 드넓은, 자유로운 삶 속으로 이끌려 갑니다. 자기 자아에 집중하는 것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은, 극과 극입니다. 자기 자아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결국 하나님보다 자기 자아에 더 많이 몰입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무시당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의 삶 가운데 사시기로 하셨다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현존하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영을 아직 모셔 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모셔 들인 여러분, 그분이 안에 사시는 여러분은, 비록 지금도 죄로 인한 한계들을 경험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삶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예수 안에서 행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여러분 안에서도 행하셔서, 여러분을 그분을 향해 살아나게 만드시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숨 쉬고 계시다면(이것도 예수 안에서처럼 여러분 안에서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실로 죽은 삶으로부터 건짐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사시는 그분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몸도 그리스도의 몸처럼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힘을 믿고 사는 옛 삶에게는 한 푼도 덕을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런 삶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은, 그 삶을 땅에 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손짓해 부르고 계십니다. 해야 할 일들, 가야 할 곳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께 받은 이 부활 생명의 삶은 결코 소심하거나 무거운 삶이 아닙니다. 이는 기대 넘치는 모험의 삶, 어린아이처럼 늘 하나님께 "다음은 또 뭐죠, 아빠?"라고 묻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을 만지셔서 우리가 정말 누구인지를 확증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곧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경험하시는 것을 그대로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우리가 그분과 더불어 힘든 때를 보내고 있다면, 분명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좋은 때도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힘든 때와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좋은 때는 서로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창조세계 전체는 장차 자신에게 다가올 그 무엇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창조세계 안의 모든 것이 얼마 동안 제어를 당하고 있습니다. 창조세계와 또 모든 창조물들이 다 자신들 앞에 놓인 그 영광스러운 때 안으로 동시에 해방되어 들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고삐로 그들을 제어하고 계십니다. 그러는 동안 현재는 기쁨 가득한 기대가 점점 깊어 갑니다.
우리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이 창조세계는, 마치 해산을 앞둔 임신부와 같습니다. 세상 전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은, 한마디로 해산의 고통입니다. 우리 주변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내면을 일깨우셔서, 우리 역시 산고를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불모의 몸, 불임의 몸이 완전히 구원받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이 우리를 작아지게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임신부의 기다림은 임신부를 작아지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다림 중에서 오히려 커져 갑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를 커지게 하는 그것을 아직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더욱 커셔 가며, 우리의 기대 또한 더욱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기다리다 지치는 순간에, 하나님의 영이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어떻게 또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기도를 하십니다. 할 말을 잃어버린 우리의 탄식, 우리의 아픈 신음소리를 기도로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휠씬 더 잘아시고 임신부와 같은 우리 상태를 아셔서, 늘 우리를 하나님 앞에 머물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결국에는 선한 것을 이루는 데 쓰인다는 확신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하실 일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분 아들의 삶을 본떠 빛으시려고 결정해 두셨습니다. 그분의 아들은 그분께서 회복시키신 인류의 맨 앞줄에 서 계십니다. 그분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삶이 본래 어떤 모습이었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그분의 자녀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결정하신 뒤에, 그들을 그분 앞에 굳게 세워 주셨습니다. 또한 그들을 그렇게 굳게 세워 주신 뒤에는 그들과 끝까지 함께하시며, 그분이 시작하신 일을 영광스럽게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패배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 인간의 처지를 껴안으셔서 최악의 일을 감수하기까지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주저 없이 내놓으셨다면, 그분이 우리를 위해 기꺼이, 아낌없이 하시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들을 들먹이며 그분께 시비를 걸 수 있겠습니까? 누가 감히,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신 분!-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고 계십니다. 그 무엇이, 우리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고생도, 난관도, 증오도, 배고픔도, 노숙도, 위협도, 협박도,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최악의 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을 증오하는 자들은 눈 하나 깜박 않고 우리를 죽입니다.
그들의 손쉬운 표적인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처치됩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동요시키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그 무엇도-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천사적인 것이든 악마적인 것이든, 현재 것이든 장래 것이든, 높은 것이든 낮은 것이든, 생각할 수 있거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든-절대적으로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꼭 품어 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