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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3장 본문

메시지신약_유진피터슨

갈라디아서3장

DavidKwon 2013. 8. 3. 06:48

정신 나간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누가 여러분을 홀렸습니까?  여러분은 분별력을 잃었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삶의 중심에 놓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니, 여러분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 틀림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모습이 여러분의 눈에 선할 텐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새 삶이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죽도록 노력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받은 하나님의 메시지에 응답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이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렵니까?  정신 나간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자신의 힘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그 일을 시작할 만큼 슬기롭거나 강하지도 못하면서, 어찌 그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학습 과정을 거친 것이 다 허사였다는 말입니까?  아직 완전히 허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닙니다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분명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신의 임재, 곧 성령을 아낌없이 주셔서 여러분 스스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신 것이, 여러분의 부단한 도덕적 열심 때문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안에서 그 모든 일을 행하시는 그분을 믿어서입니까?  이 모든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난 것은 아브라함의 경우와 같지 않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의 행위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율법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자녀인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또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방인과도 믿음에 근거하여 올바른 관계를 맺으실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이 네 안에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면서, 그 사실을 미리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으로 살았던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결코 새로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뒷받침합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조항 가운데 하나라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심한 저주를 받게 된다."

그같은 도덕적 요구조항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식으로 누구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일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과, 하나님이 해주시는 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예언자 하박국이 옳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 주신다.  그것만이 참된 삶이다."  율법 준수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일(율법 준수)을 하는 사람은 그 일로 살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우리 삶을 온전히 자기것으로 삼으심으로, 그 삶에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다"라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분은 저주를 받은 자가 되셨고, 동시에 그 저주를 푸셨습니다.  그 일로 모든 장애물이 사라져,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복이 이방인에게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믿음으로-아브라함이 받앗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생명, 곧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구 여러분, 내가 말씀드리는 자유의 삶에 대해 일상생활로부터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언장을 법 절차에 따라 작성해 놓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일 수 없습니다.  이제 약속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졌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경은 마치 일반인 모두를 가리키는 것처럼 "후손들에게"라고 말하지 않고, 법률 문서에서 쓰는 신중한 용어로 "네 후손에게"라고 말합니다.(여기서 '후손'을 뜻하는 명사는 단수로 쓰였습니다).  그 후손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적법하게 확정하신 유언을, 430년 후에 덧붙여진 부록이 그 유언의 약속을 무효로 하여 파기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부록에 명시된 계명들과 규정들은, 유언에 약속된 유산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율법, 곧 부록의 취지는 무엇일까요?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처음 약속에 덧붙여진 것으로, 사려 깊은 배려였습니다.  율법의 의의는 (후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약속을 물려받으시고, 그 약속을 우리에게 나눠 주실 때까지 죄인들을 구원의 길에 붙잡아 두는 데 있습니다.  이 율법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천사들을 통해 중개자인 모세의 손을 거쳐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내 산에서처럼 중개자가 있다면, 사람들이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받는, 복에 관한 첫 약속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약속과 반대되는 것, 곧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의 취지는,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실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림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겠다고 종교체계를 고안해 내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드러내 보이는 데 있습니다.  율법을 준수해서 우리 안에 생명을 창조할 능력이 있었다면, 우리는 벌써 생명을 얻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성숙해져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흔쾌히 응답하기까지, 우리는 모세의 율법에 세심하게 둘러싸여 보호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은 여러분이 잘 아는, 그리스의 가정교사와 같습니다.  아이들을 학교까지 바래다주고,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거나 산만해지지 않도록 지켜 주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도와주는 가정교사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목적지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직접 사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세례는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깨끗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례는 또한 성숙한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옷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생명, 곧 하나님게서 처음 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리스도의 집안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 사이에서 여러분은 모두 평등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한가족이니, 바로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언약의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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